* 스포일러 있습니다.
유서깊은 b급 호러의 시작인 유니버설 로고에 고스트 하우스 로고가 등장할 때부터 알아봤다. 본편의 시작도 전에 이미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 확신감을 가져본 것도 꽤 오랜만인 것 같다. 장르적 쾌감이나 코드는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그라인드 하우스>(데스 프루프+플래닛 테러)(2007)와 흡사하며 여주인공의 활약하는 스릴러라는 점에선 웨스 크레이븐와 레이첼 맥애덤스의 스릴러(의 교본이라 불릴만한) <나이트 플라이트>(2005)와 겹친다. 그만큼 영화적 만족도가 높다.
호러에 뿌리를 두고 제작을 겸하는 다른 감독들도 있다. 로버트 저멕키스는 조엘 실버와 [다크 캐슬]을 설립해 <헌티드 힐>(1999), <13 고스트>(2001), <고스트쉽>(2002), <고티카>(2003), <하우스 오브 왁스>(2005)를 제작했고, 단순무식 마초적인 액션광 마이클 베이 또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2003), <아미티빌 호러>,(2005), <힛쳐>(2007), <언데드>(2009)를 제작했다. 로버트 저멕키스는 주로 심령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고 마이클 베이는 성공한 할리웃의 고전을 액션이 강조한 리메이크에 열을 냈다. 샘 레이미는 드림웍스가 제작한 <링> 리메이크의 성공을 보고 <주온>의 리메이크를 제작하면서 아시아 호러 영화로 차별을 두었다. <그루지>(2004), <부기맨>(2005), <그루지 2>(2006),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2007), <디 아이>(2002)로 태국 호러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팡 형제의 <메신져- 죽은 자들의 경고>(2007)까지 샘 레이미의 관심은 '저주' 그 자체에 있었다.
사실 <드래그 미 투 헬>은 포스터나 영화 제목 그리고 영화의 인트로 자체가 결말을 다 보여주는 스포일러 그 자체다. 이것은 <마더>가 '마더=머더'를 연상시키고 오프닝 시퀀스의 춤사위와 타이틀이 뜰 때 김혜자가 왼손을 자켓에 숨기는 것만으로도 결말을 암시하는 것과 겹친다. 샘 레이미나 봉준호는 스릴러의 반전이나 엔딩의 강박관념을 지우고 속도와 이야기 자체에 승부를 걸었다. 그러나 샘 레이미와 봉준호가 다른 지점은 장르적 쾌감 그 자체인 것 같다. 비극적인 엔딩은 똑같다. 가진 것 없는 또는 가지지 못한 무산 계급의 싸움과 실패 그리고 죽음을 다루는 것도 동일하다. 샘 레이미는 무섭고 드럽게 웃기며 봉준호는 갑자기 유머가 사라졌다. 같은 이야기인데 장르도 비슷비슷한데 만족도가 다르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낸 것인가. 교묘하기는 둘다 마찬가지다. <드래그 미 투 헬>을 보고 나오면서 이 영화의 계급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영화 자체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자유자재로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샘 레이미의 천재적인 이 감각 때문에 고리타분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여주인공 크리스틴(앨리슨 로먼)이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동의할 수 없다. 영화의 초반 설정된 크리스틴은 은행 팀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얍삽한 아시아계 남자 스투와 경쟁해야 하는 마음이 여린 백인 여성일 뿐이다. 그녀에게 대출 상담을 받으러 온 노파의 간청과 승진을 저울질하다가 승진을 택한 야심이 부른 저주치곤 영화 전반에 크리스틴이 당해야 하는 일들이 부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이 지옥행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샘 레이미가 전적으로 기댄 영화는 자신이 일본에서 수입한 <주온>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풀 수 없는 저주. 그러나 이것은 사실 오리지널 영화 <링>이나 <주온>의 J 호러의 문제이기도 했다. 원혼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한 것 자체가 이 저주의 한계였다. 그래서 무섭기 보다는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기에 저주를 풀지 않을까 동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원혼의 직접적인 이유 또한 보게 된다고 해서 그들이 벌이는 무시무시한 살인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절대 풀수 없는 원혼의 저주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이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아무튼 유행한 J 호러 영화를 볼때마다 느낀 불편함이 그것이었다. 샘 레이미는 아시아의 원혼 자체에 대해 접근하기 보다는 '라미아'라는 염소 악마가 그 풀수 없는 저주라고 정하고 노파의 간청을 무시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고 설정했는데 넌센스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 이유 때문에 지옥에 가야 한다면 그건 너무 부당한 처사다. 아무튼 크리스틴이 지옥으로 가는 99분 동안 영화가 재미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장르적 쾌감은 거의 극한이 아닌가. 괜히 '익스트림 판타지 호러'라고 홍보한 것이 아니다.
친구와 이 영화를 보는데 약한 게 생긴 것과 다르게 끝까지 살기 위해 싸우는 크리스틴의 깡다구를 보면서 "저 여자애는 죽이면 안되겠다. <수퍼내추럴>의 윈체스터 형제에게 이 시간을 의뢰해서 저주를 풀어야겠다"며 농담을 했다. 무서운 노파와 싸울 정도로 담력이 큰 여자 주인공은 흔하지 않다. 크리스틴은 정말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저주와 싸운다. 죽기에 아까운 인물이다. 그럼에도 죽는다. 이유가 크지 않다. 왜 죽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오히려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라미아'에게 바친 것이 죄라면 진짜 죄다. 더욱 남친 클레이의 부모님 집에 인사드리려 가서 알게된 크리스틴의 집안 내력은 그녀를 더 동정하게 만든다. 시골 출신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서 은행 팀장 자리의 후보에 까지 오른 자수성가형이다. 그러나 아무리 따져도 죽어야 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그 이유를 찾고 말았다. 과거에 뚱뚱했던 사실. 완벽하지 못했던 블론디 여성의 실체. 뚱뚱했던 자신을 버린 죄가 그녀를 지옥으로 가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소리인가 할 것 같다. 그렇다. 눈치 빠른 분들은 벌써부터 알아차렸는지 모른다. <드래그 미 투 헬>이 가장 많이 염두해둔 영화는 <링>이나 <주온>의 저주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건 3일이라는 시간적 제한을 두고 싸워야 하는 영화의 속도감이 의식한 것에 불과하다. <드래그 미 투 헬>의 진짜 신경쓰고 있던 것은 <백설공주>였다. 백설 공주와 마녀 그리고 왕자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와 비튼 것이다. 문제는 크리스틴이 진짜 예쁜 공주가 아닌 뚱뚱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완전무결한 블론디 백인 소녀였으면 결과가 달라질까. 노파가 착하고 예쁜 크리스틴에게 질투를 한 것까지는 상관없는데 알고보니 뚱녀였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던 것이다. 여기서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본래부터가 완전무결한 아름다운 상태. 사람들의 강박이 심어놓은 진짜 호러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더 황당했던 것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왕자의 실체 클레이(저스틴 롱)의 마지막 얼굴. 지옥으로 끌려가는 공주 크리스틴을 지키지 못한다. 뭐... 난쟁이라고 할 수 있는 엑소시스트나 주변인물들 모두 실패하긴 마찬가지다. 이 실패의 유일한 이유가 뚱녀였다는 사실이면 <드래그 미 투 헬>도 정치적으로 옳은 영화는 분명 아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영화를 완벽하게 속게 만드는 기술. 봉준호나 박찬욱이 해내지 못한 지점을 샘 레이미가 해냈다. 장르적 쾌감 그 자체를 허락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감독의 딜레마다. 참고로 앨리슨 로먼은 팀 버튼의 <빅 피쉬>(2003)와 아톰 에고이얀의 <스위트룸>에 나왔던 그 여배우다. 차라리 영화 제목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정하면 너무 노골적인가.
PS. 사실 크리스틴 브라운(앨리슨 로먼)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영화 캐릭터가 있는데 그 지점에서 더이상 진전이 나가지 않았다. <더 리더>의 '한나 슈미츠(케이트 윈슬렛)'. 이와 관련해서 따로 포스팅을 해도 되지만 <더 리더>의 글도 쓰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선명하게 내 안에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법적 하자와 개인의 양심의 문제. 한나 슈미츠를 어떻게 인간이 만든 법으로 판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앞에서 내가 대답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드래그 미 투 헬]의 크리스틴 브라운 또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들의 시스템의 하수인 더 정확하게 하녀일 뿐이다. 그들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이들의 범죄를 인간으로서 판결하는 일이 사형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동정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들한테 책임을 돌리고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한나 슈미츠는 재판 이후 자신의 평생을 감옥해서 보냈다. [드래그 미 투 헬]의 크리스틴 브라운은 노파의 저주 이후 죽기 3일간 이미 생의 지옥을 맛보기 시작한다. 노파가 크리스틴의 선택때문에 죽은 것인가.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노파에게도 손녀라는 다른 선택권이 있었다. 또 복지시설이라는 선택도 존재했고. 크리스틴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알콜중독자가 된 상태고 시골 집을 떠난 도시에서 사는 그녀는 남친을 만났지만 남친 어머니의 반대도 완강한다. 차라리 그녀에게 남아있는 어떤 가능성. 팀장에서 탈락되거나 어머니의 반대로 남친과 헤어지거나 해서 도시 삶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선택도 있다. 그런데 모두 지옥으로 간다. 이들에게는 어떤 선택권이라는 것이 주어져 있지 않다. 그렇다고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처럼 소시민의 영웅담이 그려질 가능성도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라면 환영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내 시선이 가지 못한 상태다. 크리스틴 브라운보다 나한테 한나 슈미츠의 삶과 죽음이 채 정리가 안된 상태다. 지금은.
트랙백
영화는 오락이다 - 드래그 미 투 헬 2009/06/22 21:09 #
ⓒBuckaroo Entertainment/Universal Pictures/KD미디어 스포일러 있습니다.라디오에서 [드래그 미 투 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이 영화에 얼마나 만족했는지 알고 있었던 아내는 귀를 기울이며, 도대체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에 대해 곰곰 듣기 시작했다. 역시 라디오인지라 한참 재미있게 설명을 하다가, 적당히 흥미가 일어나는 선에서 더 이상의 설명을 그쳤다. 그러자 반짝이는 눈으로 아내는 물었다. 그녀의 질문은...... more
드래그 미 투 헬 2009/06/25 10:10 #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2009) 감독 : 샘 레이미 출연 : 알리슨 로만, 저스틴 롱, 로나 레이버 개봉 : 2009.06.11 ★★★★★ 어렸을때 봤던 이블데드는 가장 무서웠던 영화였습니다만... 무삭제판 DVD를 구해서 다시 보니 이거 1탄도 개그코드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ㅋ 이블데드는 저예산 공포영화로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2탄과 3탄도 나왔습니다만 뭐 2, 3탄은 공포영화라기 보다 개그 그 자체입니다. 헐...... more




덧글
오리지날U 2009/06/16 09:10 # 답글
이 영화에서.. 아니, 이런 장르에서 서사의 인과를 찾는 건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ㅎ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영화라고 해석했습니다.
그건 백설공주를 대입해도 역시 마찬가지. 왜냐면 게임의 승자가 없으니까.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백설공주의 스토리라는 게 사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이잖아요..
크리스틴이나 가누쉬 부인이나 자기 밖에 모르는 사악함으로 따지면 오십보백보.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영화]는 분명 아닌 듯..
샘 레이미는 '감독'이란 잇점을 최대한 살려서 중도적 입장을 취했으니까요.
지금 우리나라.. 넓게 보면 지구 전체가 딱 이 영화와 같은 꼴이랄까 ^^;
페이퍼백 2009/06/16 10:38 #
왜 호러 장르나 특히 영화에서의 죽음에 대해 그런 시각을 가지는지 모르겠어요. 장르적 유희라고 생각하시는지... 무산계급의 투쟁이 사회나 가진 자에게 향하지 않고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모순에 의해 서로 싸우다 죽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죠. 승자가 없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굳이 죽음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이것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해석도 가능해요.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건 [마더] 역시 마찬가지인데 씨네21 708호의 정한석 기자의 [마더] 비평에서 언급한 인권투쟁이라는 시각에 대해서 수긍이 가면서도 영화에서 직접 내가 받은 것이 그렇지 않았으니까. 뭐랄까. 영화를 보고 말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석할때 그런 것이 가능하지만 실상 영화를 볼때 우리가 그것을 느낄 수 있는가.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멈칫할 수 밖에 없네요. 이 글은 사실 흐름이 자꾸 끊겨서 간신히 끝맺었는데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그냥 적다 보니 그의 논지가 불분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그런데 정말 오리지날U님은 이 영화가 동시대를 정직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하시나요.
오리지날U 2009/06/16 12:39 #
이 영화는 다큐가 아니니 '정직'까진 아니더라도, '적절'하게는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왜 하필 여기서 굳이 죽음에 대한 시각을 꺼내신 건지 의중은 모르겠습니다만(다른 영화도 많은데)
이건 마치 '햄 없는 햄버거'라고 하면 얼추 비슷한 표현이 되려나;
개인적으로는 세월을 거쳐 오며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틀이라 봐요.
(물론, 요즘은 잡식이 대세라 '정통'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이지만)
일단 장르영화로서의 해석을 해보자면..
크리스틴이 죽는 건 당연한 겁니다. 왜냐? 가누쉬 부인이 그녀로 인해 죽었으니까요.
뭐 원래 지병이 있었는지 갑자기 사고를 당했는지 그런 건 따질 필요도 없고,
어쨌거나 여기선 '원인과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니까.. (그런 걸 다 집어넣으면 호러가 아니라
정통 드라마가 돼버리는데 아마도 샘은 그런 걸 원치 않았겠죠)
그러니 그녀의 지옥행에 이유를 갖다붙이는 거 자체가 무의미하단 말입니다.
한 마디로 [그냥 죽는 거]죠. 호러에선. 아니, 호러가 아니라; 샘 영화에선.
반면 만든 이의 중도적 입장에서 해석을 해보면..
실제로 샘이 어느 쪽을 더 우위에 두고 있는지 그건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고,
크리스틴이나 가누쉬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동일하다고 보여집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그런 장치들이 널렸죠. 비교대비 상위계급이자 기득권인 크리스틴 역시
상사의 눈치나 보고 진급을 염려하는- 시키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병정개미에 불과합니다.
상관이 진압을 명령하면 삼단봉을 휘둘러야 얼차려를 받지 않는 전경이랄까.
'노인' 또는 '약자'로 대변되는 가누쉬 부인 역시 남이 안 볼 때 달콤한 사탕을 바구니 째로
자기 가방에 쓸어넣고, 병정개미에게 아무렇지 않게 죽음의 저주를 걸어버리는 뻔뻔한 시위대인 격.
둘 다 비등비등한 입장에 처해있는 겁니다. 자기 진급하겠다고 상대가 어려운 거 알면서도
불가 판정 내리는 년이나.. 자존심 세우느라 기한 내에 상환 못해서 불가 판정 나는 게 당연한대도
자기를 모욕했다며 저주를 내리는 년이나.. 서로 살겠다고 머리채 붙들고 싸우는 거죠.
이게 위에 말씀하신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모순'이란 것일 테고요.
자, 그런데 시위대(가누쉬)가 죽었죠? (열채서 홧병으로 죽은 듯;)
그럼 전경(크리스틴)도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겁니다. 샘의 메시지는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모순을 따지기 전에 과연 그들은 최선을 다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크리스틴도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저주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고,
가누쉬도 자존심 죽이고 어떻게든 돈을 구해서 약속을 지켰으면 집이 털리진 않았을 겁니다.
서로 윈윈하고, 서로 죽지 않는 길이 있는데 둘 다 죽음을 선택했죠.
그래서 이 영화 제목은 <드래그 미 투 헬>. 서로의 머리채를 이끌고 지옥으로 ㄱㄱㅅ~
덤으로 주술사(점쟁이)의 역할도 재밌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자세,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를 쪽쪽 빨며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핵심은 절대 넘겨주지 않는 장사치 또는 기회주의자.
하지만 알고봤더니 방법은 의외로 쉽고, 가까운 곳에 있더라?
저주의 매개인 '단추'를 넘기는 게 과연 [1만달러 현찰박치기] 만큼의 값어치가 있을까.
단추는 원래부터 '자기 것'이었는데 말이죠.. 요즘 사람들은 생각이 없음.
'제물'도 마찬가지에요. 무언가를 희생시켜서 자기 잘못을 만회하려는 태도 내지는 세태.
아니, 고양이가 뭔 잘못이 있답니까ㅋ 왜 애꿎은 제3자가 죽어야 되는 건데ㅋ
그래서 라미아가 일침을 가하죠. 曰 - '내가 원하는 건 고양이가 아니라 바로 너다.'
끝으로 백설공주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왕자(클레이)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를 한 번 해봤습니다.
결국 왕자는 판타지라는 걸 까발리는 거죠, 감독은.
'현실엔 왕자가 없어 ! 아무도 널 구해주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기대려 말고, 구제는 스스로 해라 !'
뭐 아님 말구요ㅋ 그냥 제 생각입니다 ^^;
페이퍼백 2009/06/16 12:56 #
예전이라면 영화와 현실의 대입문제가 피상적이었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바로 직결되는 문제네요. 그럼에도 저는 죽음이라는 귀결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는 거에요. 영화가 세태 풍자를 한 것이라면 동의할 수 있지만 실제 영화를 봤을때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으니까 이런 글을 쓴 것이지요. 음... 시위대를 죽인 전경도 똑같은 방법으로 죽어야 한다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절박해졌다는 것일테죠. 씁쓸하네요. 뭔가 더 건드릴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저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같은 방법을 써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죽음 자체에 대해 웃고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이 영화를 즐기면서도 동의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네요.
오리지날U 2009/06/16 13:46 #
그러니까 페이퍼백님은 뭔가 '억울하다'는.. 그런 느낌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인가요?
페이퍼백 2009/06/16 14:02 #
억울하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진짜. 그렇다기 보단 사람들이 생각하는 무의식같은 것들. 영화의 어떤 상황에 대해 반응하는 현상 자체가 흥미롭긴 한데 <마더>를 보고서 많이 데어서 사실 영화 리뷰를 당분간 쓰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드래그 미 투 헬>를 보고 나서 가장 많이 겹치는 것이 <더 리더>였고 또 <마더>였어요. 영화는 충분히 즐거운데 완전히 동의하기 힘든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히치콕의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한국의 주류 영화. 봉준호, 박찬욱의 영화를 지지하는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거리가 느껴지는 어떤 막막함이랄까. 그런 벽이 있어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피로감 자체가 <드래그 미 투 헬>에서도 어김없이 나오거든요. 내가 무슨 윤리주의자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봤던 영화들. 크쥐시토프의 <십계> 중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같은 영화에서는 살인과 사형의 문제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거든요. 시대가 워낙 흉흉하니 사람들이 극단적인 반응을 보여요. 우리도 사실상 현재 큰 문제들이 있고. 뭔가 사람들이 내재된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인 것 같고. 그 히스테리함이 호러 영화에서 쉽게 반영이 되는데... 이런 과격함이 대중들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이 불편한 거죠. 이걸 그냥 샘 레이미의 취향이에요라고 말하면 더이상 말할 수 없고요. 그냥 내가 지금 피곤한 것은 <더 리더>에서 시작해 <마더>에서 이어지면서 <드래그 미 투 헬>에서도 볼 수 밖에 없는 심판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작가가 여기서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것인가.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생각할 문제인데 세 영화 모두 장르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것을 즐겨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역시 혼란스럽네요. 그냥 많이 피곤한 것 같아요.
페이퍼백 2009/06/16 14:59 #
음... 너무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선과 악의 권선징악의 동화 세계가 현실에 대입하면 그저 환상이라고 일단락시키면서 샘 레이미의 호러 영화에서 선과 악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찌질함 자체가 죽음=지옥에 가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논리 또한 모순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제기한 문제는 그보다 미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에 관한 것이었고. 계급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진정한 적을 모른채 싸우다 죽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도 샘 레이미가 단지 냉소적으로 봤다고 볼 수 없어요. 만약 그랬다면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싶고. 폭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고. 그렇다고 <드래그 미 투 헬>이 재미없다는 건 아니네요. 문제는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죽음이라는 것. 우리에게는 당장 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죽음이 있고 그것이 현재 어떻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가 현실적으로 보게 만들었고. 여기서 정치적인 입장을 내세우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샘 레이미의 방식 대로 죽음=지옥이라는 극단적인 엔딩 말고 정말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실컷 비명 지르고 웃으면서 나올 수 없는가를 묻고 있는 거죠. 노파나 크리스틴이나 모두 결함이 있는 우리와 똑같은 인물들인데 여기서 비극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하는 점.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작가/감독의 몫이겠죠. 사람들이 계급의 문제에 대해서 오리지날U님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거기서 배제된 문제가 여성을 바라보는 미의 관점이니까.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오리지날U 2009/06/16 15:01 #
음.. 역시 페이퍼백님은 감수성이 풍부한 분이시군요 ^^; 저도 약간 그런 편인데.. 음..[과격함이 대중들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이 불편] ..요 부분은 저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제가 말한 '샘의 메시지'라는 것은 A가 죽었으니 A'도 죽어야 한다.. 따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론이 아니라 가진 자가 여유를 베풀지 못하고, 반대로 가지지 못한 자도
자기 입장만 내세우며 자멸하는 과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데 있다고 봅니다.
마침 샘의 전공과목이나 다름 없는 호러를 택했으니 1석2조라고나 할까요..
<더 리더>는 저도 봤는데 한나의 죽음과 크리스틴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비교선상에 놓는 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무의미한 것 같아요. 문화를 대변하고 예술화 하는 것에 있어서 딱히
호러만 어떤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건 모든 장르가 다 그렇지 않을까...
다만, 하필 감독이 샘 레이미라 교묘하게 상황이 일치 됐을 뿐.
암튼 호러나 좀비물의 정석 비스무리한 거시기스러운 무언가가 있기는 있어요 -ㅅ-a
예를 들면 <새벽의 저주> 같은 것도 그래요. 그 영화의 키워드 두 개는 '갑자기'와 '결국'인데;;
그냥 논리적으로 따지면 존나게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근데 그 영화는 충분히 의미가 있거든요.
다시 위의 얘기로 돌아가서..
샘은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또 동시에 할 말은 야무지게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과연 선이 맞는가? 확실한가?
반대로 '악'은 정말 악이 맞는가? 가누쉬는 진실로 '약자'인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의문들.
가누쉬가 크리스틴의 책상에서 사탕을 훔치는 씬 역시 그냥 뻘로 집어넣은 건 아닌 듯합니다.
그 사탕은 공익을 추구하는- 즉, 다시 말해 여러 사람들이 편의를 공유할 목적으로 비치해놓은 건데
가누쉬는 그걸 독점합니다. 그것도 책상 주인의 허락도 없이 몰래. 슬쩍. 통째로.
약자라는 사회적 위치를 빙자해 택도 없는(불가판정을 '모욕'이라 맘대로 규정해버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거죠. 다른 사람의 불편과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입니다.
이를 테면 밥그릇 싸움한다고 시민의 발을 묶어버리는 시내버스 파업 같다고나 할까요.
자기 살자고 남을 짓밟는 건 약자나 강자나 본질적으로 같은데 다들 착각하죠.
이게 다 ㅇㅇ때문이다~ 등의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남의 차를 맘대로 뜯고 들어가 테러를 가하는 장면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고요.
그럼 크리스틴이 선인가? 크리스틴도 똑같습니다.
돼지오크였던 과거 자신의 사진이 나오는 건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것과도 비슷해요.
결국 크리스틴이나 가누쉬나 '껍데기'만 다를 뿐, 같은 존재인데 둘 다 오만과 착각에 빠집니다.
아마도 서로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겠죠ㅋ 서로가 서로에게 '니가 악의 축이네'하믄서.
샘이 말하고자 했던 건 그런 게 아닐까요..
서로 양보하지 않고, 베풀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둘 다 파국을 맞게 된다~ 하는 그런 메시지.
영화의 형식을 빌린 일종의 '경고' 같은 거죠. 말하자면.
언급하신 <마더>에도 그런 부분이 나옵니다. 반전이라고 하긴 좀 뭣하고;;
관객이 뒷통수를 맞는 부분은 결국 우리가 선이라고 멋대로 규정했던 것, 그게 선이 아니었단 사실이죠.
우리가 선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에게 희생 당해 아들 대신 감옥으로 간 것은 '진실'.
근데 진실은 묻히죠. 어찌 됐건 악은 거리를 활보합니다. 방패는 허벅지에 침을 맞고.
잔인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찝찝함을 못느끼면 그게 이상한 거고ㅋ
이 영화에서 크리스틴의 죽음 역시 그런 거 아닐까요?
잔인하고 찝찝하지만 영화니까, 호러니까, 샘이니까 할 수 있는 영화적 표현.
그 영화적 표현이 극단적이면 극단적일 수록, 잔인하면 잔인할 수록 깊이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어떤 면에선 샘의 전략이 성공한 게 아닐까 ^ㅡ^; 페이퍼백님이 피곤을 느끼시니까.
여튼 이 영화를, 또는 <마더>를 단지 즐겨야만 하는 것일까..하고 사유하는 것 자체가
메시지 전달이란 측면에서는 대성공이라고 봅니다. 물론, 일부에 해당하는 얘기겠지만.
페이퍼백 2009/06/16 15:20 #
내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사실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바로 오리지날U님이 지적한 그 부분이에요. 샘 레이미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결국 똑같다는 것. 그래서 비극이다는 것. 그 상황을 영화가 보여줬다고 말하는 것. 그런데 나는 그걸 느끼지 못하니까 이런 글을 쓰는 것이겠죠. 정한석의 <마더> 비평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쓰는 사람은 참 좋은 말을 하는데 과연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졌던가. 제가 지금 회의스러운 것은 영화 그 자체이며 영화를 만든 감독이에요.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스트레인저 댄 픽션>에서 작가의 양심과 희비극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더 리더>나 <마더> 그리고 <드래그 미 투 헬>는 충분히 연관성이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오리지날U님이 느낀 그 부분에 대해서 언젠가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봐야 겠어요. 그런데 나는 사람들의 글을 읽을때는 수긍이 가다가도 영화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거죠. 이 차이에 대해 나중에 보다 명확해지는 날이 올거라 생각됩니다. ^^
페이퍼백 2009/06/16 15:28 #
빠트린 말이 있는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떻든 감수성이 풍부해야 합니다. 거의 반무당이라서 영화나 드라마 또는 다른 예술의 인물들 속으로 들어가려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요. 실제 글이 투박하거나 거칠게 쓰여진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작업속에서는 정말 조심해서 다뤄지는 부분이 많거든요. 세밀하게 잘 관찰하는 분들의 글이 그래서 더 재미있고 성숙한 것도 사실은 그런 과정속에 수없이 놓여져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림을 조금 그렸었는데 드로잉 과정이 또 그렇죠. 밑그림을 그릴때 얼마나 세밀하게 들어가느냐 마느냐. 그렇다고 하더라도 색칠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사라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아무튼 예술을 다룬다고 믿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안의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
오리지날U 2009/06/16 15:58 #
저도 '미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에 대해선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아직 이 영화에서 만큼은 그런 부분을 세세하게 느낄 수가 없었던 터라..
여튼 즐겁고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 영화가 너무 필요 이상 엔터테인먼트 성향을 띠고,
기획물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페이퍼백님 같은 분을 만나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라.
사실, 온라인이 아니면 이런 얘기 하는 거 쉽지 않거든요ㅋ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고;
감수성에 대한 코멘트도 고맙습니다. 도움이 됐어요~
페이퍼백 2009/06/16 16:05 #
실제로 극장에서 지인들과 영화를 보고 나눌 수 있는 대화가 한계가 있어서 블로깅을 하면서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대화였어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
바니오빠 2009/06/16 10:21 # 답글
와우... 저는 그냥 별 생각없이 킬링타임용으로 본 영화인데, 이런 깊은 분석이.. -.-b
페이퍼백 2009/06/16 10:39 #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진짜 재밌었어요. 그런데 죽음이라는 부분에서 완전히 동의할 수 없으니까 결국 글을 쓰게 되네요. ^^음... 저는 6월 15일(어제)보았습니다만,
mbc라디오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배철수의 음악캠프 홈페이지 가셔서 확인해 보시면 재밌으시겠어요^^
페이퍼백 2009/06/16 10:40 #
저는 14일 봤어요. 친구와 같이 보려고 하다 개봉일을 놓쳤어요. 배철수의 음캠에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고요. 들어봐야겠네요. ^^
antiwhite 2009/06/16 12:36 # 답글
밸리 타고 왔습니다.전 엔딩에 대해서는 감독의 취향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샘 레이미 감독 이전 작품들을 볼 때 대부분의 주인공은
배드 엔딩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이블 데드 시리즈, 다크맨)
페이퍼백 2009/06/16 13:01 #
그럼 <스파이더 맨> 이전의 샘 레이미를 좋아했던 분들은 그의 취향과 공식에 어떤 의의도 없었던 건가요. ㅡㅡ;;
다크엘 2009/06/16 13:53 # 답글
이블데드 3의 경우 엔딩이 두개죠(.. ) 그럭저럭 해피한 엔딩과 절망만 가득한 제대로 된 베드엔딩...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은 '타협'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뭐, 사실 스파이더맨도 결국은 메리 제인과 헤어지는 걸 보고선 역시나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
페이퍼백 2009/06/16 14:07 #
<이블데드 3>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샘 레이미의 세계관이라고 봐야 한다는 거죠. <이블 데드> 시리즈를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 너무 오래 봐서. 지금 다시 보면 뭔가 더 선명한 것을 보게 되겠죠.
카오스95 2009/06/16 13:59 # 답글
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기본에 매우 충실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요.엔딩은 호러의 정석이죠.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불행을 겪는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지옥으로 끌려간다.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이 떠오르더군요.
페이퍼백 2009/06/16 14:11 #
제가 철학과 신화에 약한 편이라서... 그렇지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지옥으로 끌려간다"라는 대목에서 기운이 빠지네요. ㅠㅠ 공부 좀 해야겠어요. 지금 막 시학 검색 들어갑니다.
페이퍼백 2009/06/16 15:09 #
일단 뭔가 저한테 질문을 던진 것 같아서 졸문인 이 글이 아주 시시하지 않았다고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비극이라는 것. 저도 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까지는 사실 모르겠고. 일반적으로 비극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메인 캐릭터의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추락하게 된다고 배웠어요. 그런데 <드래그 미 투 헬>의 인물들. 크리스틴이나 클레이 그리고 노파 또는 심령술사 모두 성격적인 결함을 지닌 인물들이죠. 아마 지금 제가 혼란스러운 것은 이 법칙이 호러의 세계안에서 죽음이 곧 지옥이라는 법칙이라는 것 자체가 낯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크리스틴이 그렇게 힘들게 싸웠지만 결국 죽었다고 했다면 덜했을지도 모르지만 '지옥' 그 자체에 대해서 큰 거부감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싶네요. 크리스틴의 성격적 결함이란 개인적 야심인데 사실 이것이 <드래그 미 투 헬>이나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과 비교해보더라도 크게 발화된 것은 아닌 상태에요. 이제 막 어떤 것을 선택한 상황에서 갑자기 3일이라는 생의 시간이 주어진 거죠. 그렇다고 노파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어요. 노파와 크리스틴의 싸움만 보더라도 사실 노파가 더 우위에 있거든요. 단순히 물리적인 육체의 힘만으로 크리스틴은 노파를 이길 수 없어요. 젊다는 사실만으로도요. 오히려 영화가 관객을 홀리고 있는 것은 노파가 원래 죽어가는데 자신의 저승길의 친구를 크리스틴으로 정하고 데리고 가는 느낌이 강해요. 대출 연장 시켜달라는 것 자체는 핑계인 것 같고. 어차피 노파가 저승으로 가는데 데리고 가는 느낌. 완벽한 노파의 승리로 보여지거든요. 만약 샘 레이미가 노파의 그 대출 사건 이후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고 속물로 변한 크리스틴을 보여준다면 지옥행이라는 결말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을 거에요. 문제 샘 레이미가 어차피 너는 안된다. 그 선택을 했기 때문에 너의 결과는 뻔하다고 여기고 3일이라는 저주의 법칙을 세우고 그녀를 지옥으로 끌고 갔다는 점이죠. 오히려 이것은 블론디 여성에 대한 샘 레이미의 어떤 편견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싶은데... 호러에서 비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 드네요. ^^
ArborDay 2009/06/22 12:43 # 답글
[드래그 미 투 헬]이 백설공주 이야기의 변형이라는 생각은 상당히 참신하네요. 잘 들었습니다. [이블데드]를 보면서도 아, 이건 [톰과 제리]의 변형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거든요. 하지만, 크리스틴의 지옥행이 뚱뚱하기 때문이라는 점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비약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그보다는 노파(사회적 약자의 포지셔닝에 있었어야 마땅할)를 철저히 괴물로 그려내는 무리수를 이미 두었으니, 그 반대편쯤 존재하는 크리스틴의 전적인 승리를 그려내기에도 부담이 따랐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즉, 타협안으로 제시한게 그정도 결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슷한 설정으로 시작한, 그러나 정치적 야심을 품었던 [스턱]과 비교해보면 한없이 가벼운, 그저 장르를 가지고 논 영화에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
페이퍼백 2009/06/22 13:27 #
음... 그렇게 느끼실 수 있다고 봅니다. 영화 자체가 워낙 황홀하게 만들어졌고 저도 실제 극장에서 봤을때 손뼉치고 웃고 떠들고 좀 요란한게 봤거든요. ㅎㅎ 그렇지만 내내 영화를 보면서 걸렸던 부분이 바로 크리스틴의 뚱뚱한 과거 사진이었어요. 크리스틴의 숨기고 싶은 약점이기 때문에 이것이 어떻게 영화에서 작용될까 생각해보았고 처음부터 가누쉬 노파가 꼭 백설공주의 마녀처럼 보였기 때문에 여기서 크리스틴이 지옥으로 끌려가야 한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번 대출 상환 연기를 했고 그로 인해 집을 차압당한 가누쉬 노파의 연기 신청을 크리스틴이 들어줬다고 해도 얼마가지 못해 또 차압 딱지는 날라올 것이고 그때 또다시 크리스틴에게 부탁한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은 바뀌지 못한다는 것이죠. 가누쉬 부인의 직업이 무엇인지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았지만 영화에서 저주를 거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 점쟁이이겠죠. 은행의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 차압은 당연한 것이고 사회가 노파를 구제할 사회제도가 존재했음에도 가누쉬 부인이 요구한 것은 죽을때까지 자신의 집에서 살다 가고 싶다는 것이었으니까. 아무튼 이 부분에서 시나리오가 치밀하지 못한 건 사실이에요.바로 그 지점에서 가누쉬 부인이 만약 힘이 많은 노인이고 저주를 걸 수 있는 마녀라면 그리고 그것이 크리스틴을 지옥으로 보내는 절대적인 이유가 된다면 이라는 가정법으로 영화가 속전속결 진행되더군요. 그 점이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워낙 우리나라 현실이 현실인지라. 그리고 사회의 소수 약자들이 서로 싸우다 죽는 이야기 자체를 제가 싫어하는 편이라서... 그 안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저는 답이 안 나오더군요.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이야기 하는데 영화가 다루는 방식이 그렇지 않으니까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고...
아무튼 [스턱]이라는 영화 챙겨봐야겠네요. 그리고 [이블데드] 시리즈 다시 한번 감상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