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는 용기 <선샤인 클리닝> by 페이퍼백

영화가 어떤 결말을 향해 달려갈 때 관습적으로 관객들을 교훈시키려 들면 그런 영화들은 대부분 실패한다. <선샤인 클리닝>을 오프닝 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이 영화의 결말이 너무 눈에 선하다. 오프닝과 엔딩만 보여주면 정말 너무 뻔한 결말이다. 그러나 <선샤인 클리닝>은 90분 동안 인물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과정을 지켜보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더 나은 결말을 보여줄 수도 있고 외로운 인물들 모두 자기 짝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실제 영화는 그렇게 상투적으로 흐를 수 있는 지점이 다분하다. 만약 영화가 거기서 멈춰섰다면 <선샤인 클리닝>은 정말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크리스틴 제프스는 아슬아슬하게 감성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경계위를 다루면서 최대한 절제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 할리웃의 새로운 신성이라 불릴만한 에이미 애덤스와 에이미 블런트의 캐스팅은 단조로운 코미디/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시 말하지만 뻔한 소재의 드라마에 에이미 애덤스의 이마가 찡그려지고 그 큰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글썽이게 된다면 관객들은 가슴을 졸이며 동정표를 구하기 쉬울 것이다. 그것이 가장 쉽게 감동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여기에 히스테리컬한 에이미 블런트들의 신경질이 추가되면 성격이 대립되는 자매들간의 그저 그런 드라마로 전락하기 쉽상이다. 좋은 카드를 지녔지만 동시에 그것이 관습적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선샤인 클리닝>은 드라마 한 에피소드에 해당될만큼 큰 사건 없이 진행된다.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것이 중요하다. 일상은 그 어떤 선택을 했든 자신이 가진 환경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영화는 일상의 느린 템포와 변화에 많은 신경을 썼다. 충분히 더 극적으로 이끌 수 있는 지점이 많았다. 왜냐하면 등장인물 모두 우리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인물들의 오프라 쇼에 등장한다면 눈에 띄는 재활을 통해 행복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도배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선샤인 클리닝>의 엔딩이 좋은 까닭은 유별한 인물들의 실패담에 더 많은 치유책을 쓰지 않아서다.

15살 학교에서 제일 예쁘고 잘 나가는 치어 리더 로즈(에이미 애덤스)가 풋볼팀 쿼터백 맥(스티브 잔)과 오랜 연애를 했지만 맥은 로즈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여학생과 결혼하게 된다. 그렇다면 로즈의 인생이 변화했을까. 정말 끔찍한 것은 로즈는 맥의 정부로 그의 사생아인지도 모르는 아들 오스카를 혼자 키우면서 청소 도우미를 하며 서른 중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로즈는 맥의 사랑이 필요하지만 그에게 이혼을 요구하거나 경제적인 도움을 청하지도 못한다. 맥에게 있어 로즈는 첫사랑이지만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날 일탈의 환상에 불과하고 로즈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니까 이들은 모텔에서 섹스만을 나눌 뿐이다. 로즈는 아무런 변함없이 자신의 삶을 방치하고 있던 것이다. 로즈의 동생 노라(에이미 블런트)는 별 볼 일 없는 서빙이나 하면서 홀아버지와 사는 백수다. 그녀는 일하기 싫어 늦잠 자는 것이 다반사고 그 어떤 삶에도 개입하기 싫어한다. 아버지 조(알란 아킨) 역시 아내의 자살 이후 두 딸을 키우면서 특정한 직업 없이 물건이나 팔면서 지낸다. 그리고 로즈의 아들 오스카는 학교에서 문제아일 뿐이다.

이 가족에게 해뜰 날이 올 것인가. 영화는 질문해본다. 어떻게 변화가 올 것인가. 또 그 변화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영화의 시작은 의외로 심플하다. 무언가 결심한 한 남자가 총기 가게에 들어가 20구경 총을 볼 수 있냐고 묻는다. 그 남자는 자켓에서 총알을 꺼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여기에 로즈의 청소 도우미 일상이 겹쳐진다. 자신에게 질투심을 느꼈다던 동창의 집을 청소하고 나오는 로즈와 아버지 조와 살면서 늦잠을 자는 노라의 일상이 들어간 것이다. 한 남자의 자살과 경제력 없는 두 자매의 일상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그리고 그 뻔뻔한 맥이 로즈에게 범죄현장이나 자살 사고가 일어난 곳의 청소를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일러준다. 맥을 만나러 동생 노라에게 아들 오스카를 맡겼을 때 노라는 늘 그렇듯이 오스카에게 해서된 안되는 괴담을 늘어놓는다. 오스카는 이모의 말대로 학교에서 행동했다가 로즈를 학교에 들어오게 만든다. 모든 시작은 결국 맥을 선택한 우유부단한 로즈의 선택에서 일어난 일이다. 로즈는 아들 오스카와 동생 노라 그리고 홀아버지를 위해 죽은 이들이 남긴 장소를 치우는 일을 수락하게 된다.

처음 사건은 모텔에서 부부싸움을 하다 죽은 곳을 치우는 일이었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고 500달러를 벌어들인다. 핏자국이 잘 지워지지 않아 용품 가게에 들러 외팔이 주인 윈스턴(클립튼 콜린스 주니어)을 만나 이 업계의 룰에 대해서 알게 된다. 보험 회사와 준수할 법칙 같은 것들.

알콜 중독자 중년 여성의 자살을 치우면서 동생 노라는 그녀의 가방에 들은 딸 사진을 보게 되고 사진 뒤에 적힌 주소를 찾아가게 된다. 노라는 미드 <24시>의 '클로이 오브라이언'으로 유명한 린(메리 린 라즈스쿠브)을 통해 자신이 어린 시절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을 공유하려 든다. 그러나 린은 어린 시절 알콜 중독자였던 어머니에 대해 거부할 뿐이다.

학교에서 짤린 '후레자식'이라 불리는 오스카는 할아버지 조와 윈스턴 사이를 오가고 있는 중이다. 그 무렵 로즈는 동생 로라에게서 맥의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맥이 절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것을 자각하게 된 로즈는 처음으로 맥에게 이별을 고한다. 여기서 영화는 더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 사건들은 일단 보여주고 그것이 어떻게 아물어가는지 청승하게 굴지 않는다. 이것이 이 영화의 담백한 미덕이다.

동창의 베이비 샤워 초대장을 받은 로즈는 사생아 오스카를 낳았기 때문에 남들이 살아보는 삶에 대해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사건 의뢰를 노라에게 부탁하고 잠시 뒤에 합류한다고 전한다. 오스카는 윈스턴에게 맡긴 채. 그러나 동창들의 모임에서 로즈는 특별한 공감을 얻지 못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가 달라서가 아니라 이들의 삶에 대해서 동경할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노라가 먼저 도착한 집은 그녀의 실수로 화재가 나고 이들의 한낱 희망이었던 '선샤인 클리닝' 사업도 4만 달러의 빚만 얻게 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꼽으라면 불타 없어지는 집의 모습이다. 주인을 잃은 공간이 하우스가 과연 그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홈에 대한 환상 또는 하우스에 대한 상념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상징이 여기에 모두 담겨 있다고 본다. 가족은 불완전하다. 그것이 진실이다. 부인할 수 없는.

또다시 모든 것이 사라진 제로 상태. 오스카의 8번째 생일 파티를 열면서 로즈와 노라는 화해하고 할아버지는 아내의 유품인 망원경을 손자 오스카에게 선물한다. 이모 노라는 '리틀 후레자식'이라는 스티커 문신을 선물하고. 윈스턴도 여기에 합류한다. 모든 절망과 상실 뒤에 찾아온 아주 작은 평화의 순간이다.

물론 후진 영화였다면 노라와 린을 레즈비언 커플로 만들고 외팔이 윈스턴과 사생아를 낳아 기르는 로즈와 오스카는 한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가능성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절대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어디서 멈춰서야 하는지 영화가 알게 될 때 비로소 관객에게 우리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샤인 클리닝>의 반전은 아버지 조의 선택에 있다. 물론 이것이 '일확천금'일까. 전혀 아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팔아 딸 노라의 4만 빚을 갚아주고 새로 벤을 뽑아서 맏딸과 함께 새로운 '클리닝' 사업을 시작한다. 로즈는 집에만 머물지 않고 드디어 여행을 떠나게 되고 오스카는 '리틀 후레자식' 30일짜리 문신과 망원경 덕분에 새로운 학교에서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된다. 이것이 아주 큰 변화이고 희망일까. 어머니의 자살로 인한 이 가족의 트라우마가 다 치유되었을까. 전혀 아니다.

이 변화는 말 그대로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이들 가족의 선택의 변화다. 결과는 더 나빠질 수도 있고 현상 유지가 될 수도 있으며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클리닝' 사업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에 대한 긍정의 표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작은 선택을 하는 것조차도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절대 인생은 큰 전환점 없이 변화할 수 없다. 로즈와 노라 그리고 조와 오스카에게 새로운 삶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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