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자마자 생수 한 컵 마시고 음악 켜고 정신을 깨우고 부엌에 가서 만두국을 끓여서 먹고 그러고 나니 오후 1시 조금 지난 것 같다. 내일 볼 영화 미리 예매하느라 영화 홈페이지마다 모니터에 다 띄워놓고 보니 시간이 잘 맞지 않는다. 사흘 동안 봐야할 영화가 9편이다. 그냥 한 곳에서 모두 감상한다면 상관 없지만 여기저기 또 얼마나 돌아다녀야 하는지 이루 말도 못하겠다. 머리가 터치기 일보 직전 결국 h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시간표를 짜기 시작했다. 34분 통화를 했다. 전화를 하면서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반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11월에는 봐야할 영화들이 꽤 된다. 모두 소화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여의치 못하다. 갑자기 심통이 났다. 왜 하필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서 오는 건지. 올 여름 그렇게 볼 영화가 없어서 사람 피 말릴 땐 언제고. 신경질 나고 화가 나서 도저히 못 참겠더라. 무작정 공원에 나가 10.4km 걸었다. 날도 많이 풀렸다. 어제는 세상이 다 끝날 것처럼 절망적으로 우울했던 날씨가 오늘은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걸으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왜 이렇게 꼭 신경질적으로 영화가 상영되는 것인가. 세상에 그 모든 영화를 소화하려면 씨네필은 일도 하지 못하고 돈도 엄청 많고 건강해야 한다. 레오 까락스부터 아르노 데스플레생까지 늦가을 한국을 찾는다. 거기에 멀티플렉스도 이제 조금 작품성을 갖춘 작가 영화들을 틀어준다. 매년 이 신경질은 되풀이된다. 왜 여름에 우리는 행복하게 영화를 즐길 수 없는가. 할리웃의 그 쓰레기 같은 블럭버스터와 한국의 말도 안되는 장사꾼 영화들이 진정 당신의 영화적 욕구를 채워주는가. 오늘은 정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한 3개월 전에 미리 라인업을 알수도 없는 노릇이고 준비도 없이 막 전쟁을 치루듯 영화를 봐야 하는가. 씨네필들이 보는 영화들이 멀티플렉스에 편안하게 앉아서 팝콘이나 먹으면서 시간 때우는 영화들이라면 얼마든지 상관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지 않는가. 뭔가 신경질나는 이 강박관념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요즘은 하루 한편의 영화와 4개의 미드 에피소드를 보고 있다. 하루가 일곱시간 이상의 영화나 드라마에 집중하고 1시간 이상의 걷기 운동과 2시간 이상의 가사일 그리고 5시간 이상의 블로깅과 서핑으로 이뤄져 있다. 그럼 나머지는 잠만 자는가. 꼭 그렇지도 않다. 한 여섯 시간 정도 자는 것 같다. 피곤하면 일곱 시간이다. 노는 백수의 일상이 한가로울 것 같다는 부러워할 필요 없다. 나와 같은 천생 영화광은 일을 하든 놀든 상관 없이 늘 이런 강박에 시달리며 영화를 본다. 편안하게 우리 동네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고 또 서울을 찾는다. 이렇게 피곤하지 않게 영화를 즐겼으면 좋겠다. 뭔가 충분히 사색하면서 적당한 호흡으로. 하루에 서너편의 영화를 쫓기듯 보는 것 말고. 나는 영화에 미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건 올바른 연애법이 아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다가가면서 또 충분히 내 공간을 확보하면서 그렇게 연애를 하고 싶다. 지금 한국의 아트 극장은 씨네필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볼 영화가 없어서 극장에 못 가는 것보다 볼 영화가 너무 많아서 다 감당할 수 없는 지금의 상태가 좋은 것인가. 이렇게 극단을 오가지 않고 일년 12개월 내내 한결 같이 영화를 보게 할 수 있는 환경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시작도 전에 이렇게 히스테리 부리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라도 글로 풀지 않으면 정말 터져버릴 것 같다. 이런 글을 쓰는 내 자신이 너무 웃기다. 그래도 가뭄 해갈을 위해 내리는 단비가 아닌 갑자기 몰아닥치는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가 반갑기 보단 원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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